약력

우호 김영중 / 又湖 金泳仲 (1926~2005) / 조각가 / 전라남도 장성출생.

www.kimyoungjung.com

한국 현대조각 1세대로서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학부에 입학하여 김종영에게 사사. 한국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였으나, 홍익대학교 3학년으로 옮겨, 김환기, 윤효중에게 사사하였으며, 1956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1958년 ‘장갑낀여인’으로 국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61년 최고위청사(현 문화체육부청사 )와 유솜청사(현 미대사관 건물)의 대리석장식부조 전국공모에서 1등상을 수상하므로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3년, 전위적 조형그룹 ‘원형조각회’를 창단하여 멤버로서 활동하고, 쌍파울로 비엔날레(1973년), 원형조각회전(1963년, 1964년, 1966년), 한국현대조각연합전(1970년) 등에 출품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인도주의와 기계주의’, ‘해바라기’, ‘열녀문’등의 선구적 작업을 선보이며 독자적 조형어휘를 구축하였고 이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77년 세종문화회관 석부조 <비천상>, 1986년 독립기념관의 <강인한 한국인상>, 1995 광주비엔날레상징조형물 <경계를 넘어> 등 다수의 환경조형 작품 또한 있다.

김영중은 다수의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에 생소하다할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과 공공성을 사회에 끊임없이 요청하며 공헌한 바 있는데, 대표적으로 현재의 ‘문화예술진흥법’의 원안인 ‘현대미술진흥법(1969)’과 ‘미술관및박물관진흥법’의 원안인 ‘미술관법(1989)’의 제정을 건의하고 입법 추진한 바 있으며, 동아공예대전, 서울판화비엔날레, 동아미술제, 동아문화센터 등을 적극 건의하고 운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최초의 조각공원인 ‘목포유달산조각공원(1982)’을 개원하는데 지대하게 공헌하였으며, ‘제주조각공원’의 경우 직접 계획하고 건립하기까지 하였으며, 같은 해에 ‘연희조형관’을 사재로 건립하고 한국사회에 척박한 미술자료실 및 전시관을 개관한 바 있다(1986). 1982년에는 ‘국립종합예술학교(현 한예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0년에 걸친 설립추진운동을 한 바 있으며, 1997년에는 미술의 공공성을 역설하며 ‘미술장식품법’을 입법추진한 바 있다. 1994년에는 광주비엔날레 및 디자인비엔날레의 창설 및 개최를 직접 건의하고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고, 1998년 ‘한국미술저작권협회’를 창설하고 저작권법의 개정입법 또한 추진한 바 있다.

제11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1980), 대통령표창(1982), 문화훈장(1994), 금호예술상(1995), 청곡문화상(1993), 한국예총예술문화상(1991) 등 다수의 예술 및 사회공헌 수상을 한 바 있다.

detailed